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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탄생과 사건 및 몰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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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년 - 을사사화 (명종 초반) 1. 명종 즉위와 정국의 긴장 고조1545년(인종 원년), 조선 왕조는 급격한 정치적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중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인종은 병약한 몸으로 즉위한 지 8개월 만에 붕어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중종의 또 다른 아들인 명종이 즉위하였다. 문제는 명종이 불과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면서, 정권의 중심이 왕이 아닌 외척에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특히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 윤씨가 섭정을 맡으면서, 조정은 그녀의 외척인 윤원형과 그 일파에게 장악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정치 질서는 급격히 무너지고, 첨예한 세력 다툼이 촉발되었다. 이 시기의 핵심 갈등은 중종의 왕비였던 장경왕후 윤씨의 외척 세력인 **윤임 일파(대윤)**와, 문정왕후 윤씨의 외척 세력인 윤원형 일파(소윤..
1519년 - 기묘사화 (조광조 제거) 1. 조광조의 등용과 사림정치의 전성기 시작중종반정 이후 조정은 훈구 세력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중종은 점차 정치적 독립성과 도덕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 속에 새로운 세력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사림 출신의 조광조였다. 조광조는 김굉필의 제자로서 도학적 이상을 중시하였으며, 성리학적 명분과 도덕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강조했다. 중종은 조광조의 학식과 도덕성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과감히 발탁했고, 이를 계기로 사림파가 조정의 중심 무대로 진입하는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조광조는 1515년 이후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와 동조한 사림 세력은 소격서 폐지, 현량과 실시, 위훈 삭제 등 급진적인 개혁을 주도하였다. 이 시기 조선 조정은 전례 없이 도덕성..
1506년 - 중종반정 1.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반정의 시대적 배경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은 즉위 초기에는 비교적 온건한 정치를 펼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치와 향락, 폭정으로 점철된 통치를 이어가며 조선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렸다. 특히 1498년 무오사화와 1504년 갑자사화를 통해 유학자와 사관, 대신들을 대거 숙청하며 왕권의 절대화를 꾀했다. 이러한 폭력적인 정치 행태는 유교적 명분을 중시하던 조선의 정치 문화와 근본적으로 충돌하였고, 조정은 점점 침묵과 공포 속에 빠져들었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이후 어머니의 복수를 빌미로 국정을 사유화했고, 사관 제도마저 무력화시키며 정치적 견제 장치를 제거했다. 백성들은 과도한 수탈과 부역, 심지어는 여인들을 궁에 강제로 끌어들이는 패륜적인 행위에 분노했으며..
1504년 - 갑자사화 1. 연산군의 출생과 모후 폐비 윤씨 사건의 재조명1504년에 발생한 갑자사화는 조선 전기 4대 사화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이고 개인적 복수의 성격이 짙은 정치 탄압 사건이었다. 이 사화의 근본적 배경은 연산군의 출생과 그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연산군을 낳았지만, 이후 왕비로 책봉된 후 여러 갈등과 정치적 음모 속에서 폐위되었고, 결국 독살당했다. 성종은 윤씨의 폐비 사건을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서 지우기 위해 철저히 은폐했으며, 연산군에게도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철저히 숨겼다. 그러나 연산군이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던 시기, 어머니가 죽은 진실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가 본 것은 단지 정치적 음모가 ..
1498년 - 무오사화 1. 성종의 유산과 연산군의 등극, 불안한 정치적 긴장 속의 시작1498년에 발생한 무오사화는 조선 정치사에서 사림이 본격적인 탄압을 받게 되는 첫 번째 사화로, 이후 네 차례에 걸친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성종 시기에 시작된 사림의 등용과 훈구 세력 간의 갈등이 뿌리 깊게 작용하고 있었다. 성종은 훈구의 전횡을 견제하고 유교적 도덕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김종직 등 사림 인사들을 삼사 기관에 대거 등용했지만, 이로 인해 조정 내부에는 두 세력 간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성종 사후 어린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훈구 세력은 다시금 정치적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은 권신 유자광이었다. 유자광은 출신 배경이 평민으로, 훈구 내부에서도 미묘한 입..
1476년 - 사림 등용 시작 (성종) 1. 성종 시대, 사림의 등장은 우연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결과였다조선 전기, 특히 성종 대는 조선 정치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 핵심은 바로 ‘사림(士林)’의 본격적인 등용이다. 성종이 즉위한 1469년부터 시작된 정치는 세조와 예종 시기의 강권 정치에서 점차 문치(文治)로의 전환을 꾀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조정은 훈구 세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들은 개국공신의 후예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왕권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전횡과 사리사욕 추구는 성종의 이상적인 유교 정치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이에 성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조정의 도덕성과 학문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새롭게 지방에서 학문과 덕행을 겸비한 인물들을 발탁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바로 향촌의..
1467년 - 이시애의 난 1. 변방의 반란, 중심 권력에 도전하다 – 이시애의 난의 배경1467년에 발생한 이시애의 난은 조선 전기 중앙과 지방 간의 갈등이 폭발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조선 왕조는 개국 이후 지속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추진해왔고, 특히 세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지방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 관리 체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종래의 향리나 토착 세력인 ‘유향소’ 중심의 지배 구조가 점점 해체되었고, 대규모 중앙 출신 관료들이 지방에 파견되며 지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함경도 역시 이러한 통치 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었는데, 오랫동안 토착 세력으로 성장한 호족들이 지역 행정과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이시애였다. 그는 함경도 경흥 출신으로, 명문가의 후예이자 무장 집안의..
1455년 - 세조 즉위 1. 쿠데타의 끝, 즉위의 시작 – 세조의 왕위 찬탈1455년은 조선 정치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바로 세조(수양대군)가 조선 제7대 왕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해이다.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이후 2년간 실질적인 국정을 통솔하며 입헌 체제를 잠식해 갔다. 단종은 형식적으로는 국왕이었으나, 정치적 영향력은 사실상 전무했으며, 대소 신료들 역시 수양의 권력에 순응해갔다. 세조는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점차 자신의 즉위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을 병행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종이 나이가 어려 정사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으며, 실질적으로는 정난공신 체제를 통해 조정 내 권력 지형을 장악하였다. 1455년 6월 11일, 수양대군은 단종을 강제..